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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각도시 리뷰 (억울함, 무규칙 레이싱, 시스템 폭력)

by lovewsy1030 2026. 3. 3.

디즈니 플러스에 공개된 지 얼마 안 돼 전 세계 4위에 오른 조각도시를 봤습니다. 저도 처음엔 단순한 복수극이라 생각했는데, 막상 보니 예상과 달랐습니다. 무고한 사람이 조작된 증거로 살인범이 되는 과정을 지켜보는 내내 속이 타들어갔고, 그 억울함이 화면 너머로 생생하게 전달됐습니다. 특히 무규칙 레이싱 장면은 단순한 액션이 아니라 힘 있는 자가 규칙을 마음대로 바꾸는 구조 자체를 보여주는 듯해 오래 기억에 남았습니다.

조작된 증거와 억울함의 연쇄

조각도시의 핵심 villain인 조각가 요한(이광수 분)은 범죄 현장을 '조각'하는 인물입니다. 여기서 조각이란 단순히 예술 작품을 만드는 게 아니라, 범죄 현장의 모든 증거를 재구성해 무고한 사람을 범인으로 만드는 행위를 의미합니다. 그는 첨단 기술로 현장을 3D 스캔하고, 타겟의 DNA와 지문을 수집해 완벽한 위조 증거를 제작합니다. 이 과정에서 사용되는 기술은 forensic fabrication(법의학적 증거 조작)이라는 개념과 맞닿아 있는데, 실제 범죄 수사에서도 증거 조작 사례가 종종 논란이 되는 만큼 작품이 던지는 질문이 가볍지 않았습니다.

주인공 태중(지창욱 분)은 평범한 배달 노동자였지만, 요한의 타겟이 되는 순간 그의 모든 일상이 증거로 변질됩니다. 여자친구와의 관계를 증명하던 콘돔조차 강간 살인의 증거로 둔갑하고, 동생에게 물을 주던 평범한 일상마저 범행 전 알리바이로 왜곡됩니다. 이 장면을 보면서 저는 "과연 나라면 이 상황에서 무죄를 입증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국의 형사소송법은 무죄추정의 원칙(presumption of innocence)을 채택하고 있지만, 실제 재판 과정에서는 물적 증거의 힘이 압도적입니다(출처: 대한변호사협회). 작품 속 태중처럼 완벽하게 조작된 증거 앞에서는 본인의 결백을 증명하기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이런 설정이 극단적이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는데, 저는 오히려 현실의 사법 시스템이 가진 맹점을 과장해서 보여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요한이라는 캐릭터는 지나치게 전지적이라는 비판도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그의 존재가 '선택받은 1%'라는 메타포로 작용한다고 느꼈습니다. 그는 돈만 있으면 법과 정의조차 조각할 수 있는 절대 권력자이며, 태중 같은 평범한 사람들은 그저 그의 작품을 완성하기 위한 재료에 불과합니다. 실제로 작중에서 요한은 "세상을 움직이는 건 선택받은 1%"라고 말하는데, 이 대사가 단순한 악당의 독백이 아니라 현실 사회 구조에 대한 냉소처럼 들렸습니다.

무규칙 레이싱과 시스템 폭력의 상징

2부에서 등장하는 무규칙 레이싱은 작품의 백미입니다. 교도소 최악질 11명이 납치되어 아무 규칙도 없는 자동차 경주에 강제로 참여하게 되는데, 여기서 무규칙이란 문자 그대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참가자들은 서로를 죽여도 되고, 차를 부숴도 되며, 심지어 중간에 규칙 자체가 바뀌기도 합니다.

이 설정을 보면서 저는 extreme racing(익스트림 레이싱)이나 demolition derby(파괴 더비) 같은 실제 모터스포츠를 떠올렸는데, 조각도시의 레이싱은 여기에 생존 게임 요소를 결합한 형태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익스트림 레이싱이란 일반적인 서킷 경주가 아닌, 장애물과 위험 요소가 가득한 코스에서 벌어지는 경기를 말하며, 참가자의 판단력과 순발력이 승패를 좌우합니다. 작중 레이싱 역시 단순히 빠른 차를 타는 게 아니라 상대를 제거하고 살아남는 것이 목표라는 점에서 이와 유사합니다.

특히 인상 깊었던 건 차량 스펙이 공정하지 않다는 점입니다. 어떤 참가자는 경주용 차량을 받지만, 어떤 이는 고물 승합차를 받습니다. 이에 대해 요한은 "좋은 차를 받지 못했다고 꼭 불리한 건 아니다"라고 말하는데, 이는 겉으로는 기회의 평등을 가장하지만 실제로는 철저히 불평등한 구조를 정당화하는 논리입니다. 일반적으로 공정한 경쟁이라고 알려진 것들도, 실제로는 출발선 자체가 다른 경우가 많다는 점을 이 장면이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레이싱 도중 요한은 갑자기 규칙을 바꿉니다. 처음엔 "20바퀴를 가장 먼저 도는 사람이 우승"이었다가, 태중이 바이크로 탈출을 시도하자 "바이크를 잡는 사람이 우승"으로 바뀝니다. 심지어 상금도 50억에서 100억으로 두 배 증액됩니다. 이런 룰 변경은 게임의 공정성을 완전히 무너뜨리는 행위인데, 권력자는 언제든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규칙을 바꿀 수 있다는 메시지를 던집니다.

한국 사회에서도 이와 유사한 사례를 종종 목격합니다. 부동산 정책이 갑자기 바뀌거나, 입시 제도가 예고 없이 개편되는 일들이 그렇습니다. 2024년 기준 한국의 소득 상위 10%가 전체 소득의 46.5%를 차지한다는 통계가 있는데(출처: 통계청), 이는 경제적 불평등이 단순히 개인의 노력 문제가 아니라 구조적 문제임을 보여줍니다. 조각도시의 무규칙 레이싱은 바로 이런 구조적 폭력을 극단적으로 시각화한 장치라고 생각합니다.

레이싱 장면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지창욱과 양동근의 원테이크 액션 신이었습니다. 핸드헬드 카메라로 촬영된 이 장면은 마치 제가 그 안에 있는 것처럼 생생했고, CGI 없이 배우들의 육체적 연기만으로 긴장감을 끌어올렸습니다. 일반적으로 액션 신은 빠른 편집으로 박진감을 주는 경우가 많은데, 이 작품은 오히려 긴 호흡의 원테이크로 리얼리티를 극대화했습니다.

조각도시가 보여주는 세계는 철저히 약육강식입니다. 힘 있는 자는 규칙을 만들고, 힘없는 자는 그 규칙에 짓밟힙니다. 태중이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탈출을 시도하는 모습은 처절했지만, 동시에 그 집요함이 유일한 희망처럼 느껴졌습니다. 요한에게 태중은 "버그 같은 존재"였는데, 시스템이 예상하지 못한 변수가 등장했을 때 비로소 균열이 생긴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었습니다.

정리하면, 조각도시는 단순한 복수 스릴러를 넘어 시스템 폭력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작품입니다. 억울함과 분노가 오래 남았고, 통쾌함보다는 씁쓸함이 더 컸습니다. 자극적인 설정과 빠른 전개 덕분에 몰입도는 높았지만, 권력 비판 메시지가 다소 직설적으로 소비되는 점은 아쉬웠습니다. 그럼에도 '선택받은 1%'가 세상을 설계하는 구조를 정면으로 다뤘다는 점에서 충분히 의미 있는 시도였다고 봅니다. 영화 '조작된 도시'의 세계관을 확장한 이 시리즈가 앞으로 어떤 이야기를 펼칠지 기대됩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ZOKTpMQ1pz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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